현대교회

신앙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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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왜 필요한가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

-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

우리는 우주가 아무 이유없이 그저 우연히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게 만든 힘이 배후에 있는지 여부를 알고 싶습니다. 만일 그런 힘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 힘은 관찰 가능한 사실들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사실들을 만들어 낸 실재이므로 단순한 사실 관찰을 통해서는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 너머의 존재가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단 한가지 사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중략)

인간으로서 우리가 열수 있는 유일한 봉투는 인간 자신입니다. 그 봉투를 열어보았을 때, 특히 '나'라는 인간을 열어 보았을 때 제가 발견한 것은 '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며 어떤 법칙 아래 있는 존재'라는 사실, 즉 '내가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원하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질문 하나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왜 잘못되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반대하면서 세상이 너무나 잔인하고 불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저는 정의니 불의니 하는 개념을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요? 만일 인간에게 직선의 개념이 없다면 굽은 선이라는 개념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불의하다고 판단할 때 저는 이 우주를 무엇에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악하고 무의미하기만 하다면 그 일부인 제가 어떻게 거기에 대해 그토록 격렬하게 반발할수 있습니까? (중략) 우주 전체에 정말 아무 의미가 없다면 우주에 의미가 없다는 그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C.S.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선량한 노스캐롤라이나 사람들의 머리맡에 앉아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그들 다수가 경험한 영적인 세계였다. 나는 환자들이 이승에서든 저승에서는 신앙의 힘으로 궁극적인 평화라는 커다란 위안을 얻는 관경을 무수히 목격했다. 대개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었다. 신앙이 심리적 버팀목이 되었다면 대단히 강력한 버팀목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 신앙이 문화적 전통의 허식에 불과하다면 왜 이들은 하나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가? 제발 사랑스럽고 자비로운 초자연적 힘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친구와 가족들의 입을 틀어막아달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은 치료불능의 심각한 앙기나(급성 편도염)로 날마다 고통에 시달리는 한 할머니가 내게 종교가 뭐냐고 물었던 때다. 지극히 점잖은 질문이었다. 우리는 삶과 죽음에 대해 중요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인 할머니는 나에게 당신의 신앙을 이야기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확신이 가지 않습니다"라고 더듬거렸다. 할머니의 노골적인 놀라움은 내가 거의 26년동안 회피해온 난처한 문제를 끄집어냈다. 나는 믿음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근거에 대해 한번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의 일은 며칠을 두고 나를 괴롭혔다. 나는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과학자가 자료를 검토하지 않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있었던가? 인생에서 "신이 존재하는 가?"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을까? 오만이라고 밖에는 달리 적절히 묘사할 말이 없는 그 무엇과 적극적 묵인이 합쳐져 나는 이제까지 신이 실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를 꺼렸다. 갑자기 내 모든 주장이 얄팍해 보였고 발밑에서 얼음이 깨지는 것을 느꼈다.

프랜시스 콜린즈, 신의 언어